저로게르 의 블로그
2021-06-30 • Less than a minute read

임상아 가방 브랜드 리즈 뮤지컬 (+ 남편 나이 프로필)

리즈 철 ‘압구정 여신’으로 불렸던 여성이 있습니다. 데뷔 전 압구정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판 매우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압구정 여신’으로 불렸습니다. 가수 출신으로 지금은 패션 CEO가 된 임상아 이야기입니다. 임상아는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둔 뒤 패션 디자이너로 전언해 역시 크게 성공한 인물입니다. 이른바 ’임상아 가방’으로 불리는 Sang-a라는 가방 브랜드를 런칭해 대박을 쳤습니다. 국내도 아니고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임상아가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한 것만큼 대중을 놀라게 한 것은 그녀가 결혼 10년 만에 이혼소식을 전했을 때였는데요. 미국에서도 상당한 재력가로 통하는 임상아의 전 남편이 이혼 2년 만에 젊은 여성과 재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임상아 리즈

데뷔 전 임상아는 ’압구정 여신’이라는 표현으로 이미 나름 셀럽으로 통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임상아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압구정 여신’으로 불렸을 때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인물이 정우성과 구본승이었다는 점입니다. 임상아는 카페에서 일을 하다 자연스럽게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고, 이후 1994년 화장품 광고 모델로 임상아는 압구정 여신에서 정식 연예인이 됩니다.

파슨스

임상아는 CF 모델로 데뷔한 뒤 여러 작품을 통해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야망의 불꽃’ ’형제의 강’ ’아가씨와 건달들’ 등이 꼽힙니다. 모두 이름만으로도 상당한 유명세를 치렀던 작품이었습니다. 이후 임상아는 주영훈이 작곡한 ’뮤지컬’을 통해 가수로서도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됩니다. 얼굴도 예쁜데 성량도 좋았고, 춤선 자체가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여줘서 당시에는 ’내숭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기로 그녀는 가요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가수로서의 입지도 탄탄하게 다졌습니다.

임상아 돌연 은퇴 → 유학

배우로서 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임상아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한창 일을 하던 시기,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 가장 몸값이 높았던 시기에 갑작스러운 은퇴선언이었지만, 그 이유 역시 상당히 임상아다웠습니다. “일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 이미지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임상하는 뉴욕으로 건거가 뉴욕대 필름 프로덕션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의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고, 그녀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면서 디자이너로의 전향을 시도하게 됩니다. 디자인을 공부한 뒤 뉴욕 보그 잡지의 스타일리스트 보조로 일하면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톱클래스 배우이자 가수였던 그녀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바닥부터 내공을 닦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임상아 가방 브랜드

임상아는 밑바닥 생활을 통해 업계의 생리를 몸으로 체득했고, 이후 2006년 자신의 이름을 딴 Sang A Bag을 런칭합니다. 국내였으면 임상아의 이름을 딴 브랜드라는 것만으로도 환영을 받았겠지만, 임상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미국시작에서 ’상아백’은 제작 과정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방을 제작하는 장인들과의 갈등이 생기면서 공장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할 정도로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상아는 이번에도 성공을 일궜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설득으로 ’상아백’은 고급 브랜드로 발돋움했고, 상위 1% 최고급 악어백으로 입소문을 타게 됩니다. 리한나, 비욘세, 브룩쉴즈, 앤 해서웨이 등 미국의 스타들이 주요 고객이었고, 국내에서도 송혜교와 삼성 이서현 이사장이 상아백을 사용하면서 더 큰 유명세를 떨치게 됐습니다. 싼 것이 수백만 원에서 비싸면 몇천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가방이지만 유명 셀럽들이 사용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 자체로 고급 브랜드가 돼 버렸습니다.

임상아 남편 이혼

임상아가 국내에서 또 한 번 관심의 중심에 섰던 것은 재즈 기타리스트 제이미 프롭과 결혼했을 때입니다. 임상아는 불교 신자였었는데요. 유대교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개종을 할 정도로 남편에 대한 애정이 깊었습니다. 특히, 남편 제이미 프롭은 미국에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있었는데요. 임상아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서 두 사람은 잉꼬부부다운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임상아 부부는 결혼 10년 만에 이혼 소식을 전하면서 대중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임상아는 최근 방송에 출연해 무용을 전공하는 딸의 근황과 함께 전 남편의 재혼 소식을 직접 전하기도 했는데요.

방송에서 임상아는 “딸 올리비아가 여덟 살 때 이혼했다”면서 “남편은 이혼 후 2년 뒤 재혼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쁜 동생도 있다. 남편이 재혼 후 낳은 아이다. 5월에 둘째가 또 나온다. 너무 예쁘다”라고 말하면서 쿨한 그녀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임상하는 특히 전 시어머니와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냈다는 점도 알려지면서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임상아는 “딸 올리비아가 우리 집과 남편 집을 왔다 갔다 한다. 이복동생이 저희 집에도 자주 온다. 저는 남편한테 너무 고맙다. 올리비아에게 동생이 있는 게 너무 좋다. 이복동생이 올리비아를 졸졸 쫓아다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에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질투는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보니 형제의 소중함을 느낀다. 저는 딸에게 형제가 생긴 게 너무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임상아는 딸에 대해 “한국 나이로 열일곱 살”이라고 말하며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무용을 전공하고 있다는 딸은 임상아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은 모습이어서 주위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임상아는 이혼 가정의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고충을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임상아는 “전 남편과 편하게 지내다 보니 전 남편이 가족사진을 찍어 보낼 때가 있다. 나 빼고 넷이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낸다”라며 “처음에는 올리비아가 힘들어했다. 제가 중간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임상아는 “전 남편이 (자신이)이렇게 잘 지낸다는 것을 기쁘게 저와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 어쩔 때는 나한테 너무 사진을 막 보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너무 좋다”라고 웃어 보였습니다. 임상아는 이혼 뒤 연애할 기회가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임상아는 “어디까지나 제 선택이었다. 아직까지 간절하게 사랑할 사람을 못 만난 건지…”라면서 “대시한 남자는 미국 사람이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수로서 배우로서, 그리고 미국에서 패션 CEO로서 성공을 이루며 집념과 의지를 여러차례 증명했던 임상아. 앞으로 그녀가 또 어떤 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지 주목됩니다.

임상아 나이 프로필

본명 : 임상아(任尚雅) 출생 : 1973년 2월 25일, 서울특별시 학력 : 계원예술고등학교 한성대학교 현대무용 학사 파슨스 디자인 스쿨 가족 : 딸 올리비아 프롭 데뷔 : 1994년 화장품 《식물나라》 광고

Post by: 저로게르
Category: life